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연이란 예기치않게 시작되어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됩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게도 많은 인연의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혹은 그 열매가 다시 씨앗을 뿌려서 또 다른 인연을 잉태해가면서 저의 주변이 풍요로와 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으로 부터 2년전, 여름이 시작되던 무렵이었습니다.
일견 , 그다지 얼굴이 커 보이지도 않았으며 아직도 소년의 순수함이 묻어있는 남학생이 진료실 문을 열고 얼굴 윤곽에 관한 고민을 얘기하였습니다.
얼굴 가운데 부분의 윤곽을 담당하는 광대뼈의 형태를 좀 줄이고 싶다는 고민이었습니다.
간단하게 상담을 시작하였지만, 수술 방법에 관한 질문의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고 본인이 바라는 모습의 변화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꽤나 오랜시간을 설명하였습니다.
종일을 얘기해도 상담을 마무리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기다리고 있는 다른 분의 진료를 핑계로 상담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다시 상담을 받기 위해 저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그는 한손에는 본인의 노트북 화면을 펼친 상태로 들어서서, 저의 진료실 책상위에 노트북을 올려두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노트북에는 9개의 분할된 화면에 각각의 동영상이 클립으로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그가 노트북을 저에게 보여준 이유는 그 영상에 나오는 사람의 광대뼈윤곽과 같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바란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역시나, 상담에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저는 너무 비현실적인 부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되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이 남아있어 보이는 그를 돌려 보내면서 적지않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뒤 그가 다시 저의 진료실을 찾았습니다. 저의 모든 상담의 가장 마지막 순서에 본인의 상담예약을 잡아달라고 리셉션 데스크로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였기에 저에게도 더이상의 핑곗거리가 없었습니다.그러한 세번째 방문에서, 저는 그에게 상담을 마치고 차라리 병원근처 치킨집에서 시원한 생맥주나 마시면서 편히 얘기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한 제안을 건넨 이유는, 그가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제가 보기에는 굳이 광대뼈 축소술을 받을만한 이유가 없어보이기도 했고, 본인이 집착하는 수술후 모습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수술을 만류하여야 겠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그는 본인이 생각하는 광대뼈 수술을 위해서 무려 한달의 시간을 상담하는 데에만 투자하였고, 32군데 성형외과에서 총 70회 이상의 상담을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근처 치킨집에서 생맥주를 마셔가면서, 그에게 광대뼈수술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앞으로 의료인으로서의 미래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전반적인 인생얘기로 두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저도 고민이 깊어졌으며 그러한 고민의 이유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는 저에게 수술받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는 아니며 몇군데를 두고 갈등중인 상태이었지만, 광대뼈 수술에 대한 지식이 너무 깊었으며(광대뼈 수술에 관한 지식이 제가 아는 다른 어떤 사람 보다 훨씬 전문적인 경지에이르러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광대뼈수술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로서도 그를 수술할 경우, 수술후의 상황에 대해서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이었습니다.
저의 가장 큰 바램은 그가 아예 광대뼈수술을 받지 않는것이었으며, 수술을 받더라도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후, 몇번의 상담을 저에게 더 다녀갔으며(진료기록을 확인해 보니, 수술전에 총 10회의 방문을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저에게 수술을 받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7회의 방문이후 수술을 결정하였던 것 같은데, 나머지 3회는 본인의 두개골 모형을 3D프린터로 제작을 하여 저에게 가지고 와서 자기가 보는 앞에서 모의수술을 해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저는 어이가 없어서 거절을 하였고, 그는 상담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버려서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수술을 다음 겨울방학으로 연기해야 겠다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 얘기에 저는 내심 무척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다시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고. 저의 마음에도 큰 부담이었던 그의 수술날이 되었습니다. 수술당일 오전에 처음으로 그의 어머님을 뵙게 되었고, 저는 어머님께 사죄의 말씀을 먼저 드렸습니다. 아드님의 수술을 말리지 못해서 제가 너무 죄송하다고...하지만,어머님은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당신의 아들로 인해서 그동안 시달렸을 저에게 도리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의 광대뼈수술은 무난하게 진행되었으며,보편적인 경우와 비슷한 시간내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수술을 마치는 순간, 저는 생각하였습니다.이제부터, 고생의 시작이구나...그토록, 그가 집착하던 광대뼈 수술후의 경과들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변수와 사소한 불안들을 들어야 할까...
수술후, 회복실에서 의식이 명료해 진 그에게 많이 아프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본인은 통증이 전혀 없고 너무 편안하다는 것 이었습니다. 통증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저의 상식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아서, 몇번을 거듭 물었습니다. '정말, 통증이 없냐고..?'그의 답변은 일관되었고, 이후의 경과에 대해서도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사소한 불만 하나 얘기하지 않았습니다.제가 수술전 예상했던 그의 수술후 태도와는 정반대이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수술을 받은 후 얼마지나지 않아서, 저희 병원에 뜻밖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를 수술할 무렵즈음이 '라비앙성형외과'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시작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여서,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았고 많이 바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수술 받은 후 몇개월이 지난 가을부터는 안면윤곽수술을 고민하는 많은 분들이 저희 병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인연의 고리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변화의 원인을 처음에는 잘 알 수가 없었지만, 몇몇분이 다녀가고 나서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성형수술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은 정보들을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가 상담하면서 얻은 정보와 내용들이 많은 분들에게 소개되었고, 그 또한 그러한 커뮤니티에서 지명도가 꽤 높은 사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처음에는 굉장히 특이해 보였고 선뜻 수술을 하기에도 망설여질 만큼 기이했던 그와의 인연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건강하고 따뜻한 인연이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그와의 인연이 벌써 두해를 거듭났고, 항상 그가 행복하게 그의 꿈을 이루어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