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모든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악착같이 일을 해야 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 부모님의 삶도 그러했다. 어머님은 오전 8시 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종일 약국 에서 고된 격무에 시달려야 했고, 아버님 또한 하루 종일을 한평남짓 좁은 진료실에서 담배연기를 벗삼 아 집필활동과 진료횔동에 여념이 없으셨다.
필자는 맞벌이에 여념이 없으신 부모님을 둔 늦둥이 막내라는 연유로, 국민학교시절 부모님께서는 또래 친구들의 부모님과의 기본적인 교류라도 할 만한 여유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필자에겐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항상 자긍심을 지켜주고 부족한 상황이 오더라도 소담스 런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 준 큰 교훈이 있었는데. 바로, 어린시절 어머님의 따뜻하고 넉넉한 가르침 덕분이었다.
당시에는 모든 먹거리가 부족한 절대적 빈곤이 존재 하였기에, 어린이들의 생일이면 짜장면이 가장 고맙 고 황송한 선물이었다.
그러한 시절, 필자는 공교롭게도 국민학교 입학 추 첨을 하는 과정에서 뽑기를 하여 당시 필자의 고향 대구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던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 었다.
부모님이 맞벌이을 하셨기에 그다지 궁핍하지는 않 은 환경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명문초등 학교라는 부분을 고려해 볼 때 또래 교우들의 경제 적인 형편에 비해 넉넉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 았었다.
당시의 국민학생들에겐 소풍과 가을 운동회가 가장 기다려지는 학교행사였다.
소풍전날이면, 어머님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소풍 가방에 넣어 갈 과자들을 하나, 둘 고르면서 느낀 충 만감과 행복이란 지금의 어떠한 진수성찬에도 비견 할 바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소풍가방을 준비하고. 소풍 당일, 구슬땀을 흘리면서 길을 걸어 싱그러운 자연속 풀밭 에 자리를 잡고 친구들과 소풍가방을 풀어두고 맛있 는 과자들을 나누어 먹는 것이 소풍의 백미였다.
하지만, 철이없던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필자의 소 풍가방은 항상 같은 또래 상당수의 친구들과 내용물 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한 두해를 지나 면서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바나나가 귀하던 시절이어서, 소풍가방에 서 가장 자랑스러운 위치가 바나나였던 것이다. 소심했던 저학년시절을 지나, 필자의 국민학교 4학 년 가을소풍 전날 어머님과 함께 시장을 가면서 용 기를 내어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니, 제 소풍가방에는 왜 항상 바나나가 없어 요? 친구들은 바나나를 한,두개씩 꼭 가져오는데..."
어머님께서는 그동안 혼자서 상처를 담아두었을 철 부지 막내아들의 뜻밖의 질문에 애처로운 마음이었 을터인데도 불구하고, 온화하고 따뜻한 말씀과 함께 바나나를 한꾸러미 사 주셨다. "어머니는 재영이가 바나나를 그렇게 먹고싶어 하는 줄 몰랐어. 바나나를 사 줄 테니까, 소풍가방에 넣어가지 말고 집에서 먹는게 좋을것 같아. 네가 바나나를 소풍가방에 가져가면, 가져오지 못하는 친구 들은 네가 겪었던 것 처럼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 니?"
어린마음에도 불구하고,어머님의 그 한마디에 필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이 느껴졌고, 이후로 인생을 살아오면서 부러움보다는 배려가 우리네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 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