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준비 막바지에, 수가.. 아 수가 결정할 때 정말 고민이 많이 됐다. 비싸게 하면 아무도 치료 안 받을 것 같고, 그렇다고 싸게 하자니 내가 쓰는 재료, 테크닉, 진료방식에는 불가능하고. 주변 원장님들 수가가 얼만지도 몰랐지만, 보통 주변이랑 비슷하게-혹은 조금만 더 저렴하게 개원한다는데.. 하이엔드 퀄리티를 지향하면서 그게 맞는 건가? 싶고. 친구들한테 물어가며, 존경하는 원장님께도 여쭤봐가며 정말 정말 고민 끝에 수가를 정했던 것 같다.
요즘 보면 '수가'와 관련해서 젊은 치과의사들의 생각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조금은 가늠이 된다. 사실은 신세한탄에 가깝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원가도 안 나오는 진료비 경쟁에 내몰리는 이 상황을 만든 원인 제공자를 찾아 응징하고 싶은 생각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한두 명의 스피커가 지속적으로 소음을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개원 컨설팅해준다는 업자 여럿이 대형+덤핑 개원을 종용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저기서 수가를 낮추고 블랙홀 역할을 하는 치과들을 이야기한다. 제정신이 맞나 싶은 가격 정책을 펼치는 치과도 분명 있지만, 근데 그들을 비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반대로 어떤 원장님은 본인은 덤핑 치면서 후배들에게 고수가를 받으라고 훈장질을 한다. 그건 사실 좀 욕먹을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쩌고저쩌고 말로만 떠드는 건 의미가 없는걸 떠나 내로남불에 가깝다. 말로만 해서 뭔가가 이루어진다면 다 임상 대가가 됐겠지. 차라리 예전에 가격 하락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후배들도 주변 원장님들보다 단 얼마라도 가격 내려서 개원하라고 얘기하던 덴트포토 원장님이 더 진실되다. 언행불일치보다는 언행일치가 낫다.
내 생각이지만, '가격을 내리는 행위'의 동기는 99% '판매자의 이기심'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1%는 이미 벌 만큼 벌어놨거나. 그 이기심이 잘못이라는 건 아니다. 이기심은 분명 자유시장경제의 원동력이다. 나도 객단가를 올리고 싶은 나의 이기심 때문에 저가 시장 공략이 아닌 고급화 전략을 하기로 한 것이니까. 그러나 누군가는 가격을 내리는 행위를 소비자를 위한 일이라고 포장한다. 그건 복장 터질 일이다. 나도 당근마켓에 올려놓은 물건이 빨리 안 팔릴 때 '가격 얼마로 내리지?'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지만, 이건 분명 내 물건을 사갈 잠재 구매자를 위한 일은 절대로 아니다. 순전히 '더 빨리 팔아 치우고 싶은' 내 욕심이지. 모든 판매자들의 가격 하락 정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팔고 싶은 판매자의 이기심이 가격 경쟁을 부추긴다. 그러니까 박리다매의 '박리'와 '다매'는 반드시 붙어 다녀야 하는 전략이다. '박리'로 '소매'하면 망한다. 단지 그뿐이다. 그러니 '박리'하기로 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다시 말하지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반대로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저가 서비스와 고가 서비스가 '동질의 서비스'라는 인식부터 파괴해야 한다. 진료 퀄리티를 올리는 일은 분명히 어렵다. 많은 원장님들께서 하이엔드 진료 퀄리티를 추구하는 것을 치과의사의 '자기만족'이라고 한다. 왜 그런 말이 나오는가? 답은 하나다. 가격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레진을 10만원짜리 진료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을 만든 선배 원장님들을 탓하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의미가 없다고 나는 그렇 생각했다. 솔직히 레진으로 10만원을 받자면 나도 지금처럼 진료할 수가 없다. 10만원 받고 정성을 들여 접착 술식을 진행하고 레진을 빌드업하고 있으면 분명한 적자 진료가 된다. 내가 레진으로 50~75만원을 부를 수 있는 것은 10만원짜리 레진에 들이는 품(나의 노력)과 지금 내가 레진 빌드업에 들이는 품 자체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5년쯤 전에 전주의 레진 대가 원장님께서 레진으로 수십만원 수가를 받는다고 처음 전해 들었을 때, '근데 그건 그분이나 가능한 일이다'라고 다들 말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근데 아니다. 찾아온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설명과 임상 사진이 뒷받침된다면 나에게도 가능한 일이었다. 나 말고도 많은 원장님들이 레진으로 정당한 수가를 받고 있다. 진료 자체의 퀄리티도 달라야겠지만, 환자에게 보여주는 방식의 퀄리티 차이도 크다. 레진으로 50만원 이상 받을 수 있다면 누구든지 러버댐 걸고, 3way 시린지 바람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확인하는 여유가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옳지 않나? 레진 원래 그렇게 쓰는 건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얻는 게 뭐냐고. 그런데 이 치료에 내가 받은 수가를 듣고 나면, 그렇게 해줄 만하고 그렇게 받을만하다고 한다. 나는 나의 전문지식과 기술에 걸맞은 수가를 받았고, 환자는 근관치료 없이 자연치아를 보존했다. 그럼 된 거라고 생각하고 국시 통과한 치과의사라면 누구나 왜 이렇게 하는지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물론 아직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내 실력과 손기술이 더 정교해지면 그에 걸맞게 수가도 올릴 생각이다.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나는 지금 내 수준에 걸맞은 수가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당 분야에 전문 지식이 있고, 그에 걸맞은 테크닉을 구사해 증명할 수 있다면 더 높은 가격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다. 치과 진료는 분명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Technique-sensitive 하기 때문이다.
보험수가는 분명 모두에게 가혹하다. 그러니 MZ치과의사들 사이에수 '대한민국 엔도 수가는 발치 권장 수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고 일견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분명 수가 체계가 '난이도와 소요시간 등에 기반한 수가'라고 알고 있는데, 그건 진짜 절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비보험 수가는 내가 조절할 수 있다. 보험 수가는 컨트롤할 수 없지만. 그러니 나는 내가 책에서 배운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하는 것뿐이다. 말과 행동이 같기 위해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내가 뭐라고 대단한 사명감 같은 걸 가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가’진료로 강남/서초에서마저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고싶다.
그런데 솔직히 제 값 받으면 이벤트 할 게 없고 이목을 끌만한 게 없어서 개원하자마자부터 잘되는 길은 아니긴 한 것 같다.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그동안 나도 더 갈고 닦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