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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모이무(一毛二無) – 수술실에서 던지는 단 하나의 공

뉴헤어모발성형외과의원 · 김진오의 뉴헤어 프로젝트 · 2025년 6월 17일

야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무리 투수가 위기 상황에 글러브에 손을 넣고, 포수와 조용히 사인을 주고받는 그 순간. 모든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공 하나에 집중하는 그 분위기. 그 짧은 찰나에 응원가도, 관중의 함성도 사라진 듯 느껴집니다. 마치 시간마저 멈춘 듯한 그 순간, 투수는 공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야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무리 투수가 위기 상황에 글러브에 손을 넣고, 포수와 조용히 사인을 주고받는 그 순간.

모든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공 하나에 집중하는 그 분위기.

그 짧은 찰나에 응원가도, 관중의 함성도 사라진 듯 느껴집니다.

마치 시간마저 멈춘 듯한 그 순간, 투수는 공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그 눈빛을 볼 때면, 김성근 감독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공 하나에 인생을 담아야 한다.” 그리고 자주 말씀하셨던, ‘일구이무(一球二無)’라는 말.

하나의 공엔 두 번째 기회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공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던지라는 의미였죠.

어린 시절 야구 중계를 보며 그 말을 들을 때는 몰랐습니다.

다소 비장하다고도 느껴졌고요.

하지만 요즘은 그 말이 조금씩 다르게 다가옵니다.

일모이무(一毛二無) – 수술실에서 던지는 단 하나의 공 관련 이미지 1

사실 어릴 적 꿈은 야구선수였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도 잠깐 올랐고요.

투수라는 포지션은 저에게 ‘경기를 여는 공격수’처럼 보였습니다.

타자가 아무리 준비돼 있어도, 투수가 던지지 않으면 경기는 시작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마무리 투수.

그래서인지 LG 트윈스의 마무리였던 이상훈 선수를 참 좋아했습니다.

(서울고 선배님이기도 하지요!) 최근에는 정우영, 고우석 선수처럼 시원하게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9회 말, 팽팽한 상황에서 그들이 올라오면 경기장이 숨을 멈춘 것처럼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강속구 한 방으로 그 정적을 깨뜨리죠.

그 장면을 보면 마음속에서 항상 같은 말이 떠오릅니다.

"공 하나에 인생을 담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수술실에서 이 문장이 겹쳐졌습니다.

수술용 확대경 너머로 모발 하나하나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한 올의 모발이, 그 한 개의 공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떤 날은 2,000번 이상 반복되는 채취와 이식의 동작이 마치 이닝마다 던지는 투구처럼 느껴집니다.

어느새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일모이무(一毛二無)”

한 올의 모발에도 두 번째는 없습니다.

김성근 감독님이 말했던 ‘일구이무’를 빌려, 제 수술에 ‘일모이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일모이무(一毛二無) – 수술실에서 던지는 단 하나의 공 관련 이미지 2

환자분들께서 종종 이렇게 물으십니다.

“오늘 몇 모 심을 예정인가요?”

숫자가 중요한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날은, 한 모에 담긴 의미가 천 모보다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나의 모낭을 채취하고, 이식하는 그 순간.

제 마음은 마치 9회 말, 투아웃, 마지막 타자를 상대하는 마무리 투수의 심정입니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스태프들의 손놀림, 머릿속에 흐르는 리듬은 수천 번의 루틴을 통해 정교하게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제 안에서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이 말이 되새겨집니다.

“이 한 올이 마지막이다. 다시는 기회가 없다.”

수술대는 저에게 야구장의 마운드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특히 이른 아침, 첫 모낭을 채취할 때.

‘오늘은 몇 이닝까지 갈까.’

‘이 환자분에겐 어떤 투구가 필요할까.’

같은 모발, 같은 라인을 가진 환자분은 없습니다.

투수가 타자마다 구질을 바꾸듯, 저 역시 환자분의 두피 상태, 얼굴형, 머리숱, 생활패턴에 따라 설계를 달리합니다.

그래서 매 순간이 새로운 경기이고, 그 경기의 공 하나하나가 중요합니다.

매 모낭이 승부처입니다.

야구에서 경기가 끝났다고 관중이 바로 돌아서진 않습니다.

사인을 받고, 여운을 느끼고, 다음 경기를 기다립니다.

수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실을 나서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기다림이 시작입니다.

세척법, 재생치료, 그리고 새 모발이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

모낭은 공처럼 날아가진 않지만, 제 마음은 매번 던지는 투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루에도 수천 번의 움직임 속에서, 저는 ‘일모이무’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환자분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씀하십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 순간, 제 마음속에도 박수갈채처럼 작은 함성이 퍼집니다.

일모이무(一毛二無) – 수술실에서 던지는 단 하나의 공 관련 이미지 3

“원장님, 수술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일모이무(一毛二無) – 수술실에서 던지는 단 하나의 공 관련 이미지 4

콜이 들어옵니다.

마치 감독이 불펜에 전화를 걸어 마무리 투수를 부르는 듯한 느낌입니다.

저는 수술모를 동여매고, 수술실로 걸어 들어갑니다.

뚜벅뚜벅. 마운드를 향해 올라가는 마무리 투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