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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해 더 커지는 자부심, 의사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뉴헤어모발성형외과의원 · 김진오의 뉴헤어 프로젝트 · 2025년 6월 24일

출처 - EBS 출근길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강남역 사거리로 몰려드는 인파에 몸을 맡겼습니다.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스마트폰 화면에는 오늘 진료 예약 환자 명단이 빼곡히 떠 있었습니다. ​ ​ 그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건물 벽면을 뒤덮은 대형 전광판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흰 재킷, 조명 아래의 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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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BS

출근길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강남역 사거리로 몰려드는 인파에 몸을 맡겼습니다.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스마트폰 화면에는 오늘 진료 예약 환자 명단이 빼곡히 떠 있었습니다.

그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건물 벽면을 뒤덮은 대형 전광판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흰 재킷, 조명 아래의 땀방울, 비트에 맞춘 칼군무

제가 모발이식 수술을 집도했던 가수였습니다.

당황스러움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내심 기뻤지만,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만 중얼거렸습니다.

“정말 잘 자랐구나.”

그 가수는 수술 이후 한 번도 경과를 보러 오지 않아 사실 걱정이 컸습니다.

모낭이 잘 살아났을지, 라인은 자연스러운지, 부작용은 없을지...

그런데 이렇게 대형 스크린에서, 수많은 사람 앞에서 당당히 헤어라인을 드러내고 있다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옆에 서 있던 행인에게 불쑥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 머리 제가 했습니다. 잘됐죠?”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업무 중 알게 된 환자 정보를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법적, 윤리적 문제를 떠나, 환자분이 제게 보여주신 신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니까요.

문제는 제가 그 신뢰를 너무나 철저히 지킨다는 점입니다.

비밀을 지키느라 ‘나만 아는 진실’이 입안에서 맴돌고, 학회나 모임 자리에서는 늘 시험에 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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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우 혹시 선생님이 수술하셨어요?”

“아닌데요. 그분 수술하셨나요?”

이런 대화를 수십 번은 넘게 했습니다.

배우, 가수, 인플루언서... 그들이 달라질 때마다 주위에서 묻지만,

저는 언제나 시치미를 뗍니다.

마음속으로만 말하죠. ‘맞아요, 제가 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우화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입니다.

우물 속에 대고 속마음을 외쳤던 이발사처럼, 제 마음속 우물도 소리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지만 저는 우물의 뚜껑을 단단히 닫습니다.

말하지 못해 속이 간질거리지만, 대신 혼자만의 뿌듯함을 되뇝니다.

그들의 변화 속에 제 손길이 담겨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고요.

진료실에 도착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습니다.

“이제 정말 잘 나가는구나.”

입가에 번진 미소를 지우며, 오늘도 또 다른 환자분들의 비밀을 지킬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만 다시 외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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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신뢰는 결국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환자분이 제게 맡겨주신 비밀을 지키는 것 그 자체가 의사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예의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혹시 길거리에서 “저 가수 머리 제가 했어요”라고 말하는 의사를 본다면, 그 순간만큼은 저와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아마, 평생 속으로만 외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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