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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아세요? | 신사동의국 EP.3

아이디병원 · 아이디병원 - Beauty Wonderland · 2026년 9월 2일

쿠키를 냉장을 넣는 방법 혹시 아세요? >> 아, 인턴한테 시킨다. >> 인턴 시킨다고. [웃음] 이상한 거 망했거든요. 기구가 망가졌는데 교수님이 이거 만들어 와 그러면 [웃음] >> 그 부품 가지고 청개천가 가지고 아저씨가 말을 해 줘요. 어느 가게 가. 그럼 절단만 해 주는 기계가 있고. >> 아, 다들 마음이 좀 힘드신가 봐요. 옛날 생각하니까. [웃음] 안녕하세요. 신사당국의 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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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를 냉장을 넣는 방법 혹시 아세요? >> 아, 인턴한테 시킨다. >> 인턴 시킨다고. [웃음] 이상한 거 망했거든요. 기구가 망가졌는데 교수님이 이거 만들어 와

그러면 [웃음] >> 그 부품 가지고 청개천가 가지고 아저씨가 말을 해 줘요. 어느 가게 가. 그럼 절단만 해 주는 기계가 있고.

아, 다들 마음이 좀 힘드신가 봐요. 옛날 생각하니까. [웃음] 안녕하세요. 신사당국의 박상훈 원장입니다. 오늘 시간은 좀 재밌는 이야기로 준비해 봤는데요. 슬기롭지만 개빡셌던 전공이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제 원재님 많이 모셨는데 원재님 소개 한번 해 주시죠. 아이디 병원 시과 센터 센터장 이양구입니다. >> 아이디 병원 엑밸런스 센터와 뿌띠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한나 [음악] 원장입니다.

저는 사실 이양권장님 오래 봤으니까 이양권장님 막 레전트 끝나고 나왔을 때 봤거든 봤거든요. 거의 끝나고 나왔을 때부터 봐서 지금 20년 20년째 보고 있으니까 그때는 막 빠릿빠릿 했어요. [웃음]

지금은 지금은 지 [웃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낀 세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하는 거 같아. 저는 2019년도에 인턴을 한양대

병원에서 했었고요. 고대 병원에 가서 가정이학과 수련을 했었습니다. 다들 뭔가 내가 끼어 있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듯이 코로나가 이제 인턴 끝날 무렵증 터져 가지고 내부 규정이 이래저래 많이 바뀌면서 약간

혼란스러운 부분들도 있었고 회식이라던가 취소되는 일정들이 많아서 살짝 편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웃음] 보니까 거의 하루 종일 근무하셨던 거고 집에도 못 가시고 그랬던 거

같아요. >> 저는 저런 건 이해가 안 돼. 첫부터 집에 갔던 거 같고 [웃음] >> 우리는 그런 거 없었어요. 그런 건 없어 가지고 그 당시도 불금

있었어요. 불금. 금요일 날 저녁 때 출한잔 먹고 편하게 쉬고 토요일 날은 수술 없이 그냥 외래봤던 기억이 납니다. 의국마다 좀 문화의 차이는 좀 있는 거 같아요. 레전트가 동기가네 명

있는 병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번갈락하면서 일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고 원자님은 한 분 계시는 병원에서 일하셔서 그럼 그런게 좀 있었던 거 같고 어 백일장직 이런 거를 시키는 문화가 있고 알아서

해라. 어, 뭐 이런 문화가 있는 거 같아요. 거의 한 12시 전에는 퇴근을 못 해 본 거 같아요. 일을 무조건 출근 오후 한 2시에 출근해서 뭐 한 일곱 칠까진 일하다가 가고 교수님들이 뭐

번역할 거 있으면은 그거 좀 도와드리는 거 >> 어, 원서 번역 그런 거 있거든요. 원서 번역 그런 거 있으면 >> 아시다시피 그런 거 있잖아요. 뭐 코끼를 냉장고 넣는 방법 혹시

아세요? >> 아. 인턴한테 시킨다. >> 인턴 시킨다. [웃음] 이상한 거 망했거든요. 기구가 망가졌는데 교수님이 이거 만들어 와 그러면 [웃음]

만들어 오라고요? >> 어 이제 우리 이제 치고 쓰는게 교학기라 그래 가지고 이제 먹는 걸 이제 제연하는 그 기구가 있어요. 그 부품 가지고 청개청가 가지고 이거 어떻게 만들어요? 물어보면 아저씨가

말을 해 줘요. 어느 가게 가? 그럼 가든 절단만 해 주는 기계가 있고. 아, 다들 마음이 좀 힘드신가 봐요. 옛날 생각하니까 [웃음] 마음이 이렇게 즐겁진 않은 거 같은데. 아, 그때는 막 울분을

토했죠. 정말로 다 퇴근하고 저희만 있잖아요. 밤 11시 12시에 병원에 저밖에 없거든요. 그럼 막 뭐 던지기도 하고 막 뭐도 하시고 >> 어, 그러면 [웃음] >> 그런 거 하다 보면은 이제 진료

시간이 딱 끝나고 나가지고 집에 못 가죠. 듣다 보니까 제가 너무 혼자 꿀을 빤 거 같아 가지고 [웃음] 저희 세대는 그래도 주시간이라는게 좀 생기면서 사실 주시간도 일반적인 직장인 근로 시간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숫자긴 하지만 그래도 어찌됐건 뭔가 80시간을 지키려는 노력은 했던 거 같고 다만 80시간 내에 일이 잘 끝나지 않기 때문에 전산을 속여가면서 추가 근무 시간을 이제 했던 추억들이 좀 많이 있고요. 어과 특성상 매달

좀 여러 과를 파견을 다니기 때문에 그까 내과의 파견을 몇 달 가면 내과 사람들하고 같이 당직을 다 나눠서 서고 외과의 파견을 가도 주치 보면서 당직도 나눠서 서고 응급실 통해서 입원하는 건들도 꽤 있었고 특수하게

호스피스 환자들을 가정의 학과에서 담당해서 봤는데 그래서 뭐 밤중에 돌아가시면 올라가서 임종 그런 거 다 도와드리고 당연히 수술과 원자님들보다 많이 편했지만 가정의 약과 치고는 그래도 밤은 좀 거 같습니다.

[웃음] 그 >> 식은 조금 요즘 치관 좀 다른게 뭐냐면 병원에 뭐 인터넷 레전트 할 때도 토요일에도 외를 다 보니까 다 봤었는데 공부이 끝나고 돌아오니까 토요일 날 근무를 한 반으로 줄였나

그래 가지고 이제 쉬면서 하더라고요. 시가 쪽은 이제 요즘 더 꿀을 빤다 [웃음] 뭐 이런 역도도 우리 많이 있어요. 이건 뭐 제 외가 리전트한 사람들은 다 있는 경험일걸요. 아마 이제

수술하는데 째면 그 지열기가 있으면 이렇게 냄새가 올라와요. 약간 역하거든요. 막 마스크 속에 이제 통한게 나와 있 나와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수술을 끝날 때까지 그걸 계속 입에 물고 있어야 돼.

받으면 받아 가지고 [웃음] 전날에 술 저희는 뭐 수술은 안 하지만 이제 술을 많이 먹고 속이 안 좋은 상태에서 오전에 환자를 보다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술을 뭐 못 마신다 이런 건 없었거든요.

자리에 특성상 활약하는 데까지 제가 마셨던 거 똑같아요. 그게 올라온 거예요. 입안에 먹음고 있는 거잖아요. 말이 안 나오니까 저는 동기한테 불러 손짓으로 불러 가지고 이거 뭐 시킨 다음에 저는 이제

토화를 갔던 기억이 나요. 술과 관련된 얘기를 저도 받아서 한다면 자이적이든 타이적이든 술 많이 마시고 다음날 아침 일찍 회진을 가야 되는 경우들이 왕 있는데 프로포셔널하게 가야겠다 하고 이제 티가 안 난다고

생각을 하고 마스크를 쓰고 집중해서 회진을 하고 있었는데 저는 몰랐는데 제가 그때 얼굴이 굉장히 창백했나 봐요. [웃음] 그래서 회진 끝나더니 같이 돌던 교수님이 어 너 가서 좀 누워라 이제 [웃음]

선생님 또 뭐 살아갖고 근데 오랫동안 이제 근무하면서 이제 한 공간에서 근무를 하시다 보니까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께 좀 전후회가 막 생겼을 것 같아요.

안 싸우면 다행 아닌가요? [웃음] >> 서로 원수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 아닌가요? 원래 전후에는 뭐 고사하고 >> 그게 왜냐면 몸이 좀 힘들기 때문에 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날카려질 수밖에 없거든요. 부딪히지만 않으면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 아 근데 이영호님 그래도 동기랑 친하지 않아요? 친하게 지내는 거 같던데 보니까 >> 아니 친 아니 친한 애들도 있고 아닌 애들도 [웃음] 있는 거죠. 네들히

힘들었 인는 그 시을 겪고 나서 느낀게 뭐냐면은 살아감에 있어가지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어 이걸 어떻해 이런 생각보다는 어 이거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좀 몸에 좀 댄 거 같아요. 저희 세대는 다시 하라면

하겠다 그런 의고 그런 건 아니지만 [웃음] >> 아무튼 뭔가 좀 뭔가 무조건 해야 어떤 해야 되는 상황에서는 뭐 할 수 있는 그런 걸 배웠다. >> 아 저는 뭐 다시 돌아가도 선악 할

거 같아요. 좋아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는게 정답이잖아요. 잘 맞는 거 같고 어 재밌을 것 같고 저때만 해도 성가가 막 그렇게 요즘처럼 그러지 않았던 시절이긴 한데 제가 요런 거에 좀 소질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좀 했기 때문에 예 하게 됐습니다. >> 저쪽과 나는 나도 좀 괜찮았을 것 같은데라는 그런 과가 있으셨나요? >> 좀 편한 과들 소위 말하은 좀 편안한 과들이 있는데요. 그런 과들을 좀 해 봤으면 어땠을까?

환자를 안 보는과는 좀 편하잖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대면에 대한 스트레스가 좀 적으니까 그다음에 아무래도 이제 응급이 없는 과들은 좀 편하니까 그래서 그 과거가 편하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에요. [웃음]

저는 가정의 학과를 선택한게 일반적인 내과 진료를 볼 수도 있고 저희 병원 호스피스를 보니까 또 말기 암환자들 볼 수도 있고 선택권이 좀 넓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양하게 배우고자 하는 생각으로 갖고 사실 좀 편하고 싶어서

간 것도 [웃음] 있습니다. 노력 대비 이제 괜찮은 아웃풋을 낼 만한 제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거고 [웃음]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는 후회하지는 않고요. 만약에 조금 더

체력이 허 허락하고 선택할 당시에 제가 조금 더 도전적인 상태였다 하면 응급한 자를 본다거나 그런 과들도 재밌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입니다. 옛날에는 환자랑 사이가 되게 좋았죠. 지금 이렇게 좀 인간 인간적이고

그렇죠. 그 그런 사이 없었어요. 저는 저를 사 삼고 싶어 하시는 아줌마 한 분 계셨는데이 [웃음] 아주머니가 제가 환자였거든요. 땅을 어떻게 파셔가지고 돈을 많이 셨대요. 이분이 막 얘기 자랑을 되게 많이

하세요. 우리 딸 딸 좀 만나라고 계속 그래 가지고 안 만났는데 계속 자리 쉬면서 뭐 정말 이렇게 인간적으로 서로 그런 분 있지 않았어요? 여기 나갈지 안 나갈지 모르 편집할지

모르겠지만 조국이 이제 서울대 교수였어요. 법대 교수인데 저희 교정과 교수님하고 동기어 가지고 딸이죠. 그 조민인가? 아 야 [웃음] >> 못 나가겠는데요.

딸을 그정치로 했던 적이 한번 있었고 또 기억에 나는 거는이 또 나갈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미스코리아가 한 명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 당시에 일본에서 김치 사업을 크게 하시고 그러니까 백화점 이런데 저

납품하고 이러고 그래 가지고 굉장히 좀 부자였고 어떨 때는 이제 풀매를 하고 오고 어떨 때는 매월굴러 오거든요. 정말 달라요. [웃음] 정말 달라서 >> 정말 예뻐서 기억이 나시는게 아니라

전후가 너무 달라서 기억이 나시는 >> 아 진짜 예뻤어요. 어이 화장 풀미하면은 그렇게 이뻤어. 보면서 아 촬영하고 오늘 어디가 들려 촬영하고 오늘 날은 그렇게 이뻤고 아 이게 메이크업이 힘이 정말 크구나라는 거를

지금 앉아서 생각을 해 봤는데 처음 본 환자들이 조금 더 기억에 강하게 남는 거 같고 나중에 그런 분들 인종 봤을 때가 좀 마음이 그 스트레스를 계속 다 그대로 짊어지면 일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비슷한 환자들을 계속

보다 보면 점점 좀 임팩트가 없어지는 거 같기는 해요. >> 그러면 이제 돌아가시는 분들 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그 돌아갈 때 후회하는 거 뭐 리스트 같은 거 나오고 그러면 느낄 때 그 호수

하면서 그 인생관이 바뀌었다지 그런 건 없어요. 보면서 아이 사람들이 [웃음] 돌아가면서 >> 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분은 돌아가면서까지 주식창 주식 주문한 분도 계셨대. [웃음]

정말 죽을 때까지 이거 주식 핸드폰 켜 가지고 누르다가 돌아가신 분이 있다고. 이분은 제가 호스피스에서 본 환자는 아니고 외관에서 봤던 환자분인데이 환자분이 사실 성격이 진짜 괴팍했어요. 그 가족분들이 계속

간병해 주는데도 화를 엄청 내시고 임종이 인박했다는 사실도 못 받아들이시니까 나는 치료해서 집에 가서 다시 건강해질 거라고 계속 믿으셨어요. 결국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곧 돌아가실

거란 말 그분께 못 했고 야 그분 입장에서는 약간 비명 행사한 느낌이잖아요. 나는 건강해져서 집에 갈 건데라고 계속 믿다가 돌아가신 거니까 사실 그럴 가망이 없으신 분이었데도 불구하고 좀 그런 걸

보면서 약간 주변에 잘하고 정리를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지금 주변에 잘하고 계세요? 뭐 부모님한테 잘한다든지 [웃음] 직원한테 직원한테 잘한다든지 뭐

어 저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제 아직까지 뭐 대놓고 섭섭한 티를내는 가족이나 뭐 그 직원분들은 없으신 거 [웃음] 같습니다. >> 인상이 좋으셔 가지고 그러질 것 같지 않아.

그래도 레드 생활이 그래도 여러 가지로 뭐 사실 지금 우리가 의사를 한 데서 이제 꼭 중요한 시절이었고 그런데 한마디로 레지던트 생활을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뭐 이런 거 한번 얘기 한번 해 보실래요? 일은

사실 웬만큼 시켜도 어느 정도 그냥 잘 견디고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그 외로 이제 사람으로서나 뭐 의국 내 다른 문제들 때문에 좀 그런 것들을 견디는게 이제 잘 견디다라는 생각이 더 드는 거 같고 또 시간이

흐르면서 안 좋은 기억들이 많이 까먹고 미화가 돼서 [웃음] 괜찮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저는 이제 요약하자면 힘들었지만 보람찼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니까 여러 가지로 어떤

상황이든지간에 일을 해내는 거는 이제 자이든 타이든 좀 많이 배웠던 거 같고 이제 사랑 관계가 이제 어떻게 보면 잘 지낼 수도 있는데 그 상황에서 좀 힘들게 지낸 거잖아요. 조금 좀 다른 사람을 좀 배려하게 좀

살아야 되겠다는 거를 그때 많이 느꼈는데 실제로는 잘 안 돼요. 잘 안 되나 이게 문제한데 아무튼 그때 이제 배운게 많다. 이제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이렇게 좀 살아가 앞으로는 살아가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조합해 보면 사실 의자 생활 하에 있어서 전공 생활만큼 중요한 시간이 없고 많이 배우고 그런 시간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때이 수술하면서 메모해

놓은 그림 그려 놓은게 있거든요. 이제 보물 이호인데 아 옛날에 이렇게 내가 공부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뭐 의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했던게 전공 생활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뭐 이런

여러 얘기를 하다 보니까 어튼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요. 저 저희 병원이 이렇게 좀 여러 세대 원장님들이 함께 있다는 것도 너무 뿌듯하고 특히 여기 계신 분들 저희 병원에 허리 같은 역할을 해 주시는 그런 원자님이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또 신사동 의국 나의 전공이 생활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재밌는 얘기 가지고 다시 나눠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