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술실 조명 아래서 온종일 정교한 선을 그리다 꿰매다 보면, 가끔은 아무런 잡념 없이 무언가에 몰입하며 마음을 정돈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 제가 선택하는 정적인 취미 중 하나가 바로 블록 조립이에요.
사실상 자녀가 어릴 때는 너무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정말 많은 블록과 프라모델들을 많이 만들어줬었지만, 최근에는 일이 너무 바빠서 시간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최근에는 우연한 경로로 입수한 2024년 정식 라이선스로 출시된 키플리(Keeppley)의 산리오 쿠로미 스타리 오르골(K20822)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지 않았을 것 같더군요?

다년간 성형외과 수술로 쌓아올린 손 기술을 활용해서 아주 손쉽게 완성해 보았습니다.
사실... '손쉽게'라는 표현이 옳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조립 자체는 쉬웠지만, 완성은 절대 쉽지 않았었죠.



왜냐하면 이 제품은 디자인은 참 예쁘지만, 조립 과정 자체는 평범했으나 실질적인 완성까지는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제품의 한계. 키플리에 포함되어 있는 호환 블록들은 소위 공차(Tolerances)라고 부르는 부품 간의 정밀도가 살짝 아쉬운 편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오르골처럼 회전 기믹이 들어가는 경우, 회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결합 강도를 의도적으로 낮추어 설계했는지 블록끼리 맞물리는 클러치 파워가 부족해서 자꾸만 힘없이 무너지고 단단히 결합했다고 생각한 블록들이 정말 쉽게 탈락하더라고요.

자녀들이 흥미를 가지고 놀기를 바라서 만든 것인데, 조그만 오르골을 돌리면 쿠로미가 바닥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이것 자체가 일종의 동심 파괴 아닐까요?
성격상 대충 끼워 맞추고 넘어가는 게 잘 안 되는 사람입니다. 결국 진료실에서 사용하는 의료용 핀셋을 가져와 한 땀 한 땀 부품을 집어 올렸고요. 블록이 서로 맞물리는 감각을 손끝으로 예민하게 느끼며, 결속이 불안한 부분에는 본드를 아주 미세하게 도포해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중심을 잡아나갔습니다.
핀셋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해 블록의 수평을 맞추다 보니, 문득 수술대 앞에서의 제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아주 미세한 조직의 위치와 장력의 차이로 결과가 달라지는 눈 수술 역시, 이 블록 조립만큼이나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하거든요.
수술실 밖에서도 이렇게 한 끗의 어긋남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걸 보면, 의사라는 직업이 제 삶의 방식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모양입니다.

비록 남들은 보지 못할 블록 내부의 작은 틈새까지 메우느라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매끄럽게 돌아가는 오르골의 선율을 들으니 그간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지네요.
작은 부분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그 단단하고 짜릿한 성취감이 참 좋습니다.
오늘 밤은 이 정갈한 오르골 소리를 들으며 일상을 갈무리해 봅니다. 내일 아침 진료실에서도 오늘 블록을 쌓아 올렸던 그 세심한 손길 그대로, 저를 믿고 찾아주시는 분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쳐야겠어요.
피아프의원 임진영 원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