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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원장 니스 샤갈 미술관 가다

김종서성형외과의원 · 미녀들의 쉼터 김종서성형외과 & 셀퓨전씨 & 레티나지 · 2014년 4월 15일

  나는 모나코 학회를 가기전에 아침 일찍 니스에 위치하고 있는 샤갈 미술관을 나섰다. 니스에서 버스15번을 타면 15분정도 산길을 오라가다보면 샤갈 박물관이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샤갈은 프랑스 사람이 아니다. 샤갈(Marc Chagall)은 1988년 7월 7일 러시아 리오즈나에서 유대인계...

 

나는 모나코 학회를 가기전에 아침 일찍 니스에 위치하고 있는 샤갈 미술관을 나섰다.

니스에서 버스15번을 타면 15분정도 산길을 오라가다보면 샤갈 박물관이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샤갈은 프랑스 사람이 아니다.

샤갈(Marc Chagall)은 1988년 7월 7일

러시아 리오즈나에서 유대인계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그가 태어나던 당시 비테브스크의 인구는 약 66,000명 정도였고, 그 중 절반이 유대인이었다.

그림같은 교회당과 유대교회가 있었고, 옛 스페인의 문화의 중심지

 

샤갈은 9형제 중 맏이었으며, 그의 성 샤갈은 보통 유대가정에서 태어나면 다양한 유사 이름을 가진다.

그의 아버지 카츠키 샤갈은 청어상인 밑에서 일을 했고, 그의 어머니는 집에서 야채를 파는 상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중노동을 하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한 달 수입은 20루블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샤갈은 "존경받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를 생선 모티브를 포함하여 표현한다.

 

 

1906년 에 당시 수도는 샹페티부르크였으며 샤갈은 그것으로 이사를 한다

수도이자 예술의 중심지였던 상페테부르크에는 많은 유명한 예술학교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통행증이 없으면,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가까스로 친구에게서 임시통행증을 얻었다. 

그는 그곳의 명문 예술학교에 등록을 해서 2년을 공부했다.

1907년 경에는 자연주의적 초상화 풍경화를 그였다

 

시골의 미술 학교를 거쳐 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도  드ㅇ디어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샤갈은 파리로 자신만의 예술적 스타일을 발전시키기 위해 갔다. 

예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제임스 스위니는 샤갈이 처음에 파리에 도착했을 때, 

입체파 -Cubism-가 지배적인 예술 형태였으며, 

프랑스의 예술은 여전히 19세기의 물질주의적 외관에 지배되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빛의 도시이자 무엇보다 자유의 도시에서 샤갈의 파리의 꿈이 이루어졌다.

 

23세의 젊은 샤갈에게 닥쳐온 최초의 역경은 

대도시 속에 외로움과 프랑스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간은 그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갈 고민도 했으며, 

그림을 그리면서도 러시아 민속의 풍부함과 유대인으로서의 경험, 가족 그리고 특히 벨라를 꿈꾸기도 했다.

그는 여유 시간이 있으며, 갤러리나 살롱, 그리고 특히 루브르에서 공부를 했으며, 

그가 종종 러시아 장면을 그리는데 사용한 구와슈 기법을 배운 곳도 파리였다. 

그는 또한 몽마르뜨와 Latin Quarter을 종종 방문을 했고, 파리지엥으로 숨쉬는 것을 행복해 했다.

 

작가소개 : 파리에 거주하는 샤갈은 한 보헤미안 동료는 샤갈을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문화적이거나 종교적인 상지과 민속적인 이야기에 애정을 지닌 샤갈은 이러한 주제들을 회화에 끌어들였는데 

이는 전통적인 주제를 거부하는 가장 급진적인 전위 미술가들에 의해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시적인 정신과 문화적인 해석이란 두 특징은 그 어느 것도 샤갈 작품의 완전한 의미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큰 꽃다발과 우울한 어릿광대, 

날아다니는 연인들, 

환상적인 동물들, 

성서의 예언자들,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 

등의 이미지들을 묘사한 민속적인 작품들로 

샤갈은 20세기 파리파의 중요한 전위미술가들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 환상적인 주제를 화려한 색과 특유의 능란한 붓질로 묘사했는데, 

그의 양식은 표현주의나 입체파, 추상미술과 같은 1914년 이전의 운동들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개인적인 성향을 띠었다. 

비평가들은 때때로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가벼운 감상이 깃들어 있고, 

작품의 질이 고르지 않으며 모티프가 지나치게 되풀이 된다고 비판하지만, 

특히 걸작들은 현대의 작품들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시각적 은유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 한다. 

 

자그럼 샤갈 기념관에서 본 그림을 전해드리고자한다

김종서원장 니스 샤갈 미술관 가다 관련 이미지 1 니스에 보관된 샤갈의 곡예사 다른 그림들은 몽상적이고 밤에 보면 좀 무서을수도 있지만

이그림은 아주 밝다 사람과 삶을 붉은색으로 효현한 샤갈

그러나 역시 위에보면 뜬금없는 남자의 얼굴이 불쑥 나온다

목은 아주 길고 얼굴은 비대칭이며 사진의 우측얼굴이 더 작고 아래로 쳐져 있다.

90% 의 사람의 얼굴이 왼쪽이 더 작다는것을 당시 샤갈도 알았던것 같다. 

다리는 각도가 전혀 맞지 않는다 몽상적인 표현이다 대부분의 드림에서 샤갈의 몸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훨씬 이전의 미켈란젤로는 해부학을 공부하고 그림이나 조각은 혈관하나하나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샤갈은 해부학을 몰라서 그럴까? 그것은 아니다.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이며 몽환적으로 표한하기를 좋아했던것이다.

김종서원장 니스 샤갈 미술관 가다 관련 이미지 2

붉은 색은 얼핏 보기는 무섭기도 하지만 사랑과 삶을 표현하고 있다

가운데 3명은 천사이다 나중에 일어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좌측에 서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과 그의 부인 사라

아브라함에 천사들을 염접하는 구양성서의 내용을 그린것이라한다

김종서원장 니스 샤갈 미술관 가다 관련 이미지 3

모세가 하늘로부터 성서를 받는 장면입니다

좌측은 역시 붉은 색으로 사람과 사랑을 표현하였고 노란색은 하늘과 땅의 중간세상을 표현하네요

얼핏 보면 마치 아이가 그린 그림 같이 느껴집니다만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그림이더군요^^

김종서원장 니스 샤갈 미술관 가다 관련 이미지 4

샤갈의 그림에는 항상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 말입니다

여기 위에는 물고기도 있군요 앗 우측에 보면 새한마리가 다리위에 앉아있군요

달밤의 파란색과 바이올린의 음악이 여인을 즐겁게 하는 장면입니다 역시 여인의 몸은 사랑의 색깔인 붉은 색으로 표현했군

자세히 보면 다리와 엉덩이는 엎드려 있는데

상체는 바로 누워있군요

춤을 추는것을 표현하려 했을까요?

김종서원장 니스 샤갈 미술관 가다 관련 이미지 5

수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구약성경의 이 유명한 일화 "이사악의 희생"

붉은색의 삶을 표현하는 아브라함이 장작불 위에 이삭을 눕혀놓고 칼로 막 찌르려는 찰나 ~~

흰색 파란색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났다.

이에 아브라함은 행위를 중단하고 천사를 바라보고 있다. 

강한 색을 즐겨 쓰는 샤갈은 아브라함을 붉게 표현한것은 삶을 표현하거나

장작의 피어오르는 불을 표현하는듯도 보인다.

다른 그림과 달리 여기서 붉은색은 아들의 피를 상징하려는 듯이 보이기도한다.

노랗게 칠해진 이사악은 샤갈이 항상 중간을 표현하던 노란색으로 그려졌다. 

나무 뒤에는 양 한 마리는 이사악을 대신할 번제물이다. 

멀리 우측에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보이고 있다.

 

-김종서원장 니스 샤갈 미술관 방문기-

김종서원장 니스 샤갈 미술관 가다 관련 이미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