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성형외과 전문의 신두한입니다.
제 인생의 발자취를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제 삶의 발자취 입니다.^^] 관련 이미지 1](https://pub-9f2bb3498faf4d1d8714b41df24753e3.r2.dev/content/clinics/archive/f98b721498/naver_blog/gimlet1124/assets/by_hash/6c6c25a878fe356181addbf34fe81203306056bf6023b71b27ddd538c078c856.jpg)
성형을 집도하기 전 핵심은 처음 수술이 어떻게 잘못되어 있고, 어떻게 개선을 시켜야 할지에 대한 판단, 환자분들 개개인에 맞춘 정확한 진단과 수술 계획, 정확한 판단과 더불어 능숙한 솜씨, 또한 환자가 희망하는 모습에 대한 깊은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의 실력에 안주하지 않고, 위의 핵심들을 보다 더 잘 소화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또 고민합니다.
이전의 모습에서 변화된 모습으로 자신감을 가지는 환자들을 보면 수술 중에 힘들었던 일들이 한순간 사라집니다.
수술 후 만족하는 환자분들을 보면, 이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
말하는 것보다 로봇 조립 놀이에 흥미를 가지다.
저는 유아기에 걷는 것도 늦었고, 말하는 것 또한 확연히 늦었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아이가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뒤처지는 것을 보니 공부를 잘하기는 틀렸구나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하지만, 말도 잘 못하던 아이가 로봇이나 장난감을 조립하고 무언가를 가위로 오리고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하루 종일 만들기 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해, 비록 다른 모든 것에는 늦었지만 남들보다는 손 재주 만큼은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 성형외과 의사가 되었지만 저의 꿈은 로봇 발명가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마징가Z, 로봇태권V 만화영화를 보고 ‘저런 로봇을 내가 직접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래서 인지 로봇뿐만 아니라 미니카, 행글라이더 같은 조립하고 만드는 것을 매일 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형편에 진학하게 된 의과대학
저희 어머니는 간호사셨습니다.
저는 장남이고 밑으로 여동생 4명이나 있는데, 무조건 아들 하나 의사를 만들겠다는 어머니의 끈질긴 설득으로 의대에 입학했습니다.
현실적인 부분도 받아들여야 하기에 아쉽지만 어렸을 적부터 키워온 기계조립, 발명 관련 분야의 꿈을 접고, 의대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의 맏아들로 태어나 여동생들 4명이 학업을 진행해야하는 상황에서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의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조립이나 만들기에 부합하는 일을 하려면 성형외과 전문의를 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에 새로운 꿈이 생겨 다시 빛이 생기는 것 같았고, 성형외과 전문의를 향한 열정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의 부족함을 성실함으로 채우다.
어머니께서는 간호사이셨기 때문에 병원에서 3교대를 하셨고, 아침에 퇴근을 하셔서 잠을 자고 다시 출근하시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부모님 방문수업이나 운동회 같은 날에 다른 친구들은 어머니가 오시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날에는 항상 어머니께 괜히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저녁에 어머니가 출근하시는 날에는 4명의 여동생들의 뒷바라지는 전부 제 몫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바로 ‘어머니’입니다.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의 5남매 중 맏아들이었던 저는 더더욱 성실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부모님이 저 뿐만 아니라 그 밑으로도 4명이나 되는 동생들의 뒷바라지와 학업 진행까지 도맡아서 하시기 버거우실 것 같아, 대학 들어가자마자 과외를 시작했고 책은 친
구들의 책을 빌려 공부하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국가고시를 보기 직전까지도 과외를 했습니다.
부족한 가정 형편은 성실함으로 채우려 노력했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 레지던트 수석 합격하다.
1997년 국립중앙의료원 레지던트 시험에서 내,외과 포함 전체 수석으로 레지던트에 합격하였습니다.
그 중 성형외과 레지던트는 2명만 뽑았었는데 2명중 한명은 병원장의 지인이었고, 저는 수십명의 경쟁자를 뚫고 전체 수석으로 합격하였습니다.
덕분에 병원 내에서도 제 실력이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타 분야의 의사들이나 동기들의 추천으로 오신 환자분들의 수술을 진행하는 일도 꽤 많이 있습니다.
페이닥터 생활에서 양심과의 싸움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를 취득 한 후 집안형편이 여유롭지 않아 개원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 의사를 시킨다고 저에게 많은 돈을 들였으니, 당연히 집안의 모든 책임은 맏아들인 제가 지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가장이 된 것입니다.
가족 전체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비장함이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페이 닥터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페이 닥터 생활은 저에게 있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환자들의 상담은 대표 원장님이 하시고 저는 수술실에서 모든 수술을 도맡아 했습니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이 모든 현실이 환자들한테 해서는 안될 일이라 생각이 들어서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내 환자는 상담도 수술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내손으로
페이 닥터로 상담 없이 수술만 맡아 진행하게 되면서 내가 집도하는 환자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술 전 환자들과 상담하며 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알고 상담을 처음 시작하는 순간부터 수술을 끝내는 순간까지 내가 전적으로 직접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6개월 후 신대방동에 3억을 대출해 조그만 제 병원을 열었습니다.
그 당시 의사한테는 무담보로 3억을 대출해 주더군요.
무리하면서까지 대출을 한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제 환자를 제가 직접 수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던 중 같이 일하던 간호사가 찾아와서 귀띔을 해 주더군요.
'원장님, 성형외과는 압구정에서 수술해야 명의로 인정받아요' 라구요.
많은 고심 끝에 더 많은 손해를 무릅쓰고 병원 이전을 강행했습니다.
저는 저를 알아주는 곳에서 진료하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올곧게 한 이름으로
진료를 하면서 환자분들께서 하소연을 하시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수술했던 병원에서 얼굴을 망쳐놔서 다시 찾아갔더니 병원이 없어졌더라.' 혹은 '이제 그 병원 소속이 아니니 책임을 질 수 없다.'라는 말들이었습니다.
집도의가 본인이 치료한 환자를 책임지기 싫어서 수술을 잘못 해놓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의사로서 자격이 없는 일이고, 같은 의사로서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 생각했고, 제 손을 거쳐 간 환자분들은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두한성형외과로 제이름을 걸고 정착해 단 한번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의 메인
제 인생에서 굵직한 일 세가지를 꼽으라면 제가 의사가 되어서 성형외과로 진로를 결정한 것, 지방이식센터로 문을 열고 지방이식과 다크써클 눈밑분야에서 유명해진 것, 쌍꺼풀 재수술로 인정받고 전문분야가 된 것 이렇게 세 가지가 제 인생에서의 큰 획이라 생각합니다.
레지던트 시절 개원하신 선배님을 찾아가 쌍꺼풀 재수술을 배웠고, 이후 제가 집도한 수술이 잘되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많은 환자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수없이 많은 케이스를 수술하다보니 눈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이 본원을 찾아오게 되는 비율이 높아졌고, 재수술의 수술 횟수가 거듭될수록 제한점이나 수술 가능 여부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또한 재수술이 가지고 있는 제한점을 최대한 극복하여 점점 더 얼굴과 조화를 이루는 눈 디자인까지 가능한 수술 노하우를 얻었습니다.
수술을 끝내는데서 만족하지 않고 수술 후 환자분들의 전, 후 사진을 분석하며 아쉬운 부분들 보완하려 노력하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하고 또 연구했습니다.
이 노력들로 더 많은 극한 재수술에 대한 경험으로 쌓이게 되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이제는 누구보다 더 정확한 수술 결과를 예측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쌍꺼풀 재수술뿐만 아니라 2009년 국제성형외과학회 연자로 강연에서 최초로 국제성형외과학회에 다크써클 미세지방이식을 발표하고 다크써클 교정 원리에 대한 강연을 하며 입지를 다졌고, 국제학회에 미세지방이식 강연과 2013년 최초침습 성형심포지엄에서 연자로 강연, 최소 침습 성형심포지엄에서의 애교살 미세지방이식 강연 또한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환자뿐 아니라 내 스스로도 만족하는 얼굴로
어릴 적부터 무엇을 만들고 조립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조립하거나 만들기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옆으로 삐져나온 부분이 있거나 대칭이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을 무척 싫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성형의 부작용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의 대게의 경우는 양쪽이 비대칭이거나 균형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의사들 또한 그렇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양쪽 대칭과 균형을 맞추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양쪽 균형을 맞추기 상당히 까다로운 케이스 들이 많이 있지만, 저는 제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 이상 수술을 끝내지 않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환자분들도 만족하는 수술을 집도하려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콜펫 기법 지방이식술을 개발하다.
기존의 지방이식술은 생착률이 떨어지며, 울퉁불퉁 하다던가 석회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도 타병원에서 이식을 하시고 부작용으로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저는 이 부작용들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그렇게 생각해낸 방법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콜펫 기법입니다.
지방이식의 관건인 생착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 다층 지방이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방의 생착률을 높이기 위해 한 곳에 많은 양을 주입하지 않으면서 혈관과 최대한 접촉해 생착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냈으며, 그와 더불어 이식된 지방이 울퉁불퉁해 지지 않는 방법 또한 고안하여‘터널링’이라고 하는 과정을 개발해 내었습니다.
터널링이란 말그대로 피부 바로 밑에 터널을 뚫듯이 공간을 마련하고 그 후에 지방을 주입하기 때문에 지방을 다 넣은 후에도 중력방향으로 쳐지거나 울퉁불퉁 해지지 않는 방법입니다.
환자분들의 다른 고민거리인 주름도 지방이식으로 완벽히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였으며, 연구 끝에 박리과정이 추가되어, 박리로 주름을 핀 상태에서 주름 밑으로 지방이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콜펫 기법이 생겨나게 된 계기는 저를 믿고 수술을 하시는 환자분들에게 위하여, 지방이식을 보다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이 시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을 넘어선 세계 일등 성형외과가 되리라.
수술을 집도할 때는 수술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몰두하게 됩니다.
간혹 이런 나를 돌아보며 나는 왜 이렇게 수술에 몰두하는가 다른 직업의 많은 사람들도 그럴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일요일 하루 이외에는 쉬는 시간도 따로 없이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저는 제가 수술을 집도하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다면 억지로 일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수술을 하면서 당연히 힘들때도 있고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집도가 끝나고 난 뒤의 느낌은 피곤함보다는 만족감이 더 앞섭니다.
제가 처음 쌍꺼풀 재수술을 집도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재수술은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술이고, 1~2mm 차이가 상당히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수술을 하게 되면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지게 됩니다.
수술이 끝난 후 환자분께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며, "원장님은 정말 수술 중에 아무말씀도 안 하시네요."라고 하셨습니다.
생각치도 못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수술에 집중하고 몰두하고 있었구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손에 수술을 믿고 맡겨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최상의 결과를 드리기 위해 더 집중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제가 맡고 있는 성형이라는 분야에 대해 한국에서의 일등 더 나아가 세계 일등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 삶의 발자취 입니다.^^] 관련 이미지 2](https://pub-9f2bb3498faf4d1d8714b41df24753e3.r2.dev/content/clinics/archive/f98b721498/naver_blog/gimlet1124/assets/by_hash/0a99a1d0bc4f4d9079e71417ff2e4dab7bbcf5fb7e38bbb55a50a7c3cf6b269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