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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로도 브랜드디자인을 한다 : <책> 산책, 서울의 글자들

재주좋은치과의원 · Naver Blog

타이포그래피 l Typography . ​ 이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파워포인트 PPT나 한글 문서작업을 하면서 글자나 내용이 좀 더 한눈에 읽히고 눈에 잘 들어오는 방식을 늘 찾고싶어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레포트 하나 만드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걸리기도 했지만, 밤 잠 줄여가며 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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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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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파워포인트 PPT나 한글 문서작업을 하면서 글자나 내용이 좀 더 한눈에 읽히고 눈에 잘 들어오는 방식을 늘 찾고싶어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레포트 하나 만드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걸리기도 했지만, 밤 잠 줄여가며 덜 놀아가며 내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PPT나 문서를 다듬고나면 그 뒤에 찾아오는 뿌듯함이 나는 참 좋았다. 오죽 집요하게 그랬으면 내가 매학기마다 만든 치대수업 써머리에 주구장창 같은 한글폰트와 비슷한 양식을 만들어 쓴다는 걸 주변애들이 알아보고 그걸 '현수체'라고 부르기도 했다.

치과대학 졸업반이 되고 우리 치대 총대단 학술대표를 맡았을 때도, 누군가는 선배들이 남겨놓은 자료를 동기들에게 그대로 받아넘기며 체면치레만 하는 동안 난 누구보다 열심히 11개 치대 국시 동기들을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선배에게 받은 문서가 아니라, 노트북 한글에서 <빈 문서>를 켜놓고 오직 가독성 하나만을 위해 내 병원실습 쉬는 시간을 모조리 쏟아부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800페이지가 넘는 치주과학 교과서를 99페이지 밑으로 요약해 줄이면서도, 어떤 내용이 어디까지인지, 뭘 외워야하는지 딱 보면 알아볼 수 있게 문서를 편집하느라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다. 그렇게 만든 치주과학 학술자료집을 많은 분들이 열심히 봐주는 것 만으로도 나는 꽤나 뿌듯했다.

글자를 통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은 쉽지만 동시에 아주 어려운 일이다. 글자를 보는 행위가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고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시험공부를 위한 글이라면 애초에 '고통'밖에 느낄 일이 없겠지만, 적어도 내용이 아닌 글자의 배열이나 가독성때문에 고통받는 일은 없도록 하고싶었던 내 마음이 그 때 그 학술자료집에 담겨있었다.

이제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쓸 때, 그때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거나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일은 사실 여태껏 없었다. 내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내가 이것을 통해 큰 이익을 얻고자하는 이기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내 치과>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면, 그 때는 또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누구든 '실패하려고' 창업을 하는 바보는 없겠지, 그래서 모든 사업장은 각자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창업을 준비하고, 다양한 선택지를 고민하고, 조언을 구하고, 고르고 골라 만들어진 하나의 사업장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업장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면 어떨까?

뇌과학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리가 불쾌함 또는 불편함을 느낄 때 뇌는 그런 감정을 '통증'으로 느낀다고 한다. 우리 뇌는 그런 통증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게 되어있다. 웹사이트가 느리게 뜨면 기다리지 않고 그냥 나가버리는 것처럼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은 정말로 '통증'과도 같은 것이다. 만약 간판의 글자나 판촉물의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어디를 읽어야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혼란스럽다면, 어쩌면 누군가 우리 치과를 기억해주고, 어쩌면 누군가 한 번은 와줬을지도 모르는 그런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결국 '틀에 박힌 듯한' 판촉물이 나오고, '누구나 다 똑같은' 디자인이 쉽게 선택된다. 섣불리 달라 보이려고 특이한 디자인을 시도한다면,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망할 수도 있다.

그러면 독특하면서도 보는이로하여금 <즐거움>을 주는 것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1st choice는 모방이다. 누가뭐래도 '잘 된 디자인을 따라하는 것'만큼 쉬우면서도 좋은 방법은 없다. 물론 완벽히 베끼는 짓은 해서는 안되겠지만, 이쪽 저쪽에서 호감을 주는 디자인 요소들을 잘 살펴보고 재해석해 적용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디자이너들도 결국엔 무수히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받고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니말이다.

글자로도 브랜드디자인을 한다  : <책> 산책, 서울의 글자들 관련 이미지 1

그런 점에서 여러가지 이론서적들 보다 이렇게 군더더기 없는 <사진집>이 꽤 많은 영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에게 Pinterest가 인기가 있고, 자주 참고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도 인터넷에서 영감을 얻고 수많은 모작을 한다.

위에 소개한 <책> '산책, 서울의 글자들'은 글쓴이가 서울의 길을 돌아다니며 찍은 각종 간판, 그리고 다양한 글씨들을 '글씨 없이' 모아놓은 책이다. 물론 이 책으로 치과 간판을 만드는 데에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치과 간판은 단 하나도 없다. 주로 '힙'하다고 할만한 상점들 간판이 많은데, 그래서 사실 <가시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병의원 간판에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것 말이다. 치과 관련된 것으로 영감을 얻고싶다면 앞서 이야기한 핀터레스트가 훨씬 더 도움이 될 것같다.

대신, 이런 재미는 있다. 고깃집 간판이면 '고기가 맛있어 보이는 느낌'의 글자가 있고, 양복집이면 '정갈하고 멋진 모습이 그려지는 느낌'의 글자가, 레스토랑이 '부담스럽지 않고 캐주얼해보이는 느낌'의 글자가 있는데, 이런 느낌의 서체(font)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재미. 그게 좋았다. 그래서 그런 느낌으로, 치과 브랜딩에 도움을 받는다면 <내가 원하는 치과 이미지>를 강화시켜줄 서체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길 바란다.

만약 치과가 아니라 다른 사업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한 번은 꼭 빌려서라도 훑어보면 좋을 것 같다. 광고 아니고 서평단도 아니고 그냥 보고 좋아서 쓴 글이다.

산책, 서울의 글자들

저자 가가린 출판 앨리스마켓 발매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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