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넷플릭스
얼마 전 진료를 위해 내원하신 제주도 환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화제였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제가 “제주도 사투리는 자막이 있어도 잘 안 들리더라고요”라고 하니,
환자분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죠.
그 드라마에서 진짜 제주 사투리를 쓰는 건 단 세 분.
팥을 아이유에게 뿌렸던 관식이 할머니, 쌀을 챙겨주던 할머니·할아버지 부부.
나머지 배우들의 사투리는 어색했다고요.
전 전혀 몰랐습니다. 다 자연스럽게 잘하는 줄 알았거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외국인이 아무리 유창하게 한국어를 해도 우리가 어딘가 낯설게 느끼는 것처럼,
사투리도 그런 미세한 결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억양, 발음, 말의 호흡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결들이,
진짜 원어민이 아니면 낼 수 없는 ‘진짜’가 있나 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거의 20년 전, 레지던트 시절이었죠.
부산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고, 동료들과 식당에 갔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괜한 장난기와 친근함을 담아 이렇게 주문했습니다.
“아지매, 여기 돼지국밥 세 그릇 주이소.”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저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식당 아주머니 얼굴이 굳어버렸거든요.
그 일이 있고 나서 경상도 출신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어설픈 억양도 문제였겠지만, 사투리를 흉내 낸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비하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조심스러워졌고, 동시에 더 깊이 사투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사투리는 단순한 말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뉘앙스와 감정, 세월과 정서가 녹아 있습니다.
한 줄의 대사 안에 그 지역의 역사, 가족의 기억, 사랑의 추억이 담겨 있기도 하니까요.
저는 사투리가 쓰인 대사들을 참 좋아합니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종종 써먹기도 하죠.
예를 들면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응용해서,
“내가 어제 ㅇㅇ교수님이랑 학회도 가고, 논문도 쓰고, 질문도 하고, 마 다했어!”

또 영화 바람의 “그라믄 안 돼”도 자주 씁니다.
“그라믄 안 돼. 학회 발표 마감 어기면 안 돼!”
드라마 소년시대 속 임시완 배우의 대사,
“구황작물이여? 뭘 자꾸 캐물어 싸.” 도 생각나네요.
서울말은 정제된 문서 같다면, 사투리는 삐뚤빼뚤한 손글씨 같습니다.
서울말은 매끄럽지만 차갑고,
사투리는 서툴러도 온기가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투리를 쓰는 분들을 만나면 괜히 마음이 먼저 열립니다.
그 억양 속엔 농담 같은 정과, 말끝에 숨은 역사가 느껴지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더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사투리를 흉내 내는 건, 단순한 말투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삶 전체를 따라 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 속에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살아온 시간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진료를 마치며 저는 조심스레 한마디 해보았습니다.
“멀리서 진료 보러 오시느라 폭싹 속았수다.”
어색했습니다. 긴장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환자분께서 웃으시며 이렇게 받아주셨습니다.
“원장님도 폭싹 속았수다. 하하.”
그 말에 마음이 참 따뜻해졌습니다.
사투리란,
저에게는 닿을 수 없는 어떤 고향 같습니다.
정감 있고, 친근하고, 사람 냄새 나는 말.
그 말 속엔 어쩌면, 누군가의 삶이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