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8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최고위 과정에서 박은철 교수님의 '의료 수가'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계산법이 바뀌면, 현장은 달라진다.
수가라는 것은 결국 “의료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할 것인가”를 정하는 신호 체계인데, 그 신호가 공정하고 똑똑할수록 환자, 의료진, 재정이 모두 덜 다칩니다.
진료비를 매기는 방식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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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에 담긴 품목을 하나하나 더하는 낱개 계산(행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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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요리처럼 한 판에 묶는 세트 계산(포괄 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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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을 일정 기간 맡아 관리하는 등록/월정액(인두·총액)
단위가 커질수록 보험자의 불확실성은 줄고 제공자의 위험은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위를 키울수록 중증도 보정, 위험공유·재보험 기능, 야간·응급 가산, 성과 인센티브같은 안전장치를 반드시 붙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가를 구성하는 부품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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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무엇을 기준으로 묶고 나눌지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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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치 점수: 난이도·시간·자원소모의 형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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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산지수: 점수에 붙이는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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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요소: 야간·공휴일·응급·필수과 같은 어려운 상황을 보완
이렇게 네 가지가 함께 맞물릴 때 왜곡이 줄어듭니다. 어느 하나만 어긋나도 행태가 한쪽으로 쏠리거나 필요한 진료가 밀리게 마련입니다.
교수님은 미국처럼 병원비는 ‘입원 1건 패키지’로 주고, 의사 보수는 ‘행위의 난이도와 시간’에 따라 따로 계산하는 분리 방식이 서로의 과잉·과소를 견제해 균형을 만든다고 설명했고, 우리 현실에서는 이를 적절히 절충한 신포괄제(입원·기본 진료비는 한 묶음으로 정산하되, 의사의 수술·시술 등 전문 행위는 난이도·시간에 따라 별도 보상하는 절충형)이 더 현실적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지금의 신포괄제는 청구 규칙이 과도하게 복잡하고 수익성이 불투명해 참여도가 떨어지니, 불필요하게 복잡한 규정은 정리하고, 야간·응급·중증·필수과에는 실제로 체감되는 가산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핵심은 선의에 의존하지 말고 숫자와 보상으로 행동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완전 공감합니다. 밤과 휴일에 병원은 언제나 더 피곤하고 위험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시간에 환자를 살려야 한다면, 그 시간을 선택할 이유를 숫자로 만들어줘야 합니다. 보상은 겉치레가 아니라 스스로 당직을 자청할 의사가 나올만큼 줘야 합니다. 밤·응급·중증 진료에 참여하면 개인도 병원도 확실히 이득을 느끼도록 설계해야 사람이 움직입니다. 또 특정 시술을 소수만 하게 막는 규정은 완화해 더 많은 인력이 나눠 맡게 하고, 그에 맞춰 인력·시설 기준과 보상도 함께 손봐야 공백이 줄어듭니다. 결국 필수의료를 움직이는 힘은 선의가 아니라 제도의 인센티브입니다..

핵심은 ‘형평’과 ‘수준’을 나눠서 보는 겁니다.
‘형평’은 같은 수고·난이도면 비슷한 보상을 주자는 의미이고, ‘수준’은 전체 보상 높낮이(점당 단가)가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게 맞추자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난이도의 초음파라면 어디서 하든 비슷한 값을 받고(형평), 그 값 자체가 지나치게 낮거나 높지 않게 전체 평균을 조정합니다(수준).
지금처럼 분야별로 점당 단가가 따로 놀면 격차가 굳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해법은 단계적으로 한 기준으로 모아가는 것이고, 급변 충격을 줄이기 위해 과도기에는 상대가치 점수를 조정해 부드럽게 옮겨 타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매번 줄다리기하지 않도록 2~3년마다 데이터로 자동 재조정(자동 리밸런싱) 하는 규칙을 제도에 넣으면, 말이 아니라 숫자가 균형을 잡게 됩니다.
행위 중심에서 '사람과 성과 중심'으로의 이동도 설득력이 컸습니다. 만성질환처럼 반복·지속 관리가 핵심인 영역은 환자 등록 기반의 주치의·인두제가 어울리고, 정밀 진단과 치료의 질이 승부처인 영역은 결과(성과) 기반 보상이 맞습니다. 현장은 하나의 정답을 강요받을수록 경직됩니다. 지속=환자별, 정밀=결과별, 빠른·단순=행위별이라는 원칙을 품은 '혼합형 운영'이야말로 우리나라 의료 체질에 맞습니다. 그래서 ‘주치의 등록제’, ‘지역 의료기관이 팀으로 묶여 비용과 성과를 함께 책임지는 방식(책임의료 연합)’, ‘성과를 달성하면 더 주고 못하면 덜 주는 방식(성과기반 보상)’을 상시로 시험하고, 효과가 검증된 설계는 빨리 확산시키는 정책의 기본 루틴을 갖춰야 합니다. 제도는 계속 손봐야 살아 있고, 살아 있으려면 실험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신포괄제의 단순화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규칙을 간단히 다시 쓰고, 청구 코드·지표는 꼭 필요한 최소한만 남겨 하나의 표준으로 맞추자는 뜻입니다. 복잡하면 선의로 일하는 사람도 실수하고, 제도의 취지가 흐려집니다. 다음으로 ‘체감되는 가산표’를 새로 짜야 합니다. 야간·응급·중증·필수과에 당직표가 실제로 바뀔 만큼 보상을 주되, 중증도 보정과 위험공유를 함께 설계해 “덜 쓰면 유리한 제도”가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의료사고의 형사 부담을 낮추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민사 보상은 정교화하되 형사는 예외적 상황으로 한정해, 필요한 치료를 주저하지 않게 해야 수가 개편의 효과가 제대로 살아납니다.
수가 개편의 목적은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공정한 계산법으로 현장의 좋은 선택을 유도해 환자에게 더 나은 결과를 돌려주는 것
이제 필요한 것은 복잡함을 걷어 내는 결단과, 필요한 곳에 과감히 보상하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계산법이 달라지면, 우리의 일상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곧 환자의 안녕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글: 뉴헤어성형외과 김진오(대한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학술이사)

중앙대학교 가정의학과 김정하 교수님과 쿨맨비뇨의학과 이근욱 원장님
| 항목 | 핵심 내용 | 한 줄 메모 |
| 지불방식의 큰 틀 | 낱개(행위)·세트(DRG)·등록/월정액(인두) | 단위가 커질수록 제공자 위험↑, 안전장치 필수 |
| 필수 안전장치 | 중증도 보정·위험공유/재보험·야간·응급 가산·성과 인센티브 | 숫자로 행동을 바꾸자 |
| 수가의 네 부품 | 분류·상대가치·환산지수·조정요소 | 형평(가치) + 수준(단가) 동시 관리 |
| 미국 vs 한국 | 미국: 병원 DRG + 의사 행위, 한국: 신포괄(세트+추가주문) | 균형은 분리·절충에서 온다 |
| 신포괄의 과제 | 청구 복잡·수익 불확실 → 참여 저해 | 룰 단순화 + 체감형 가산으로 유인 회복 |
| 환산지수 | 분야 격차 고착 | 단계적 수렴, 과도기엔 RVU 조정 │ |
| 필수의료 | 밤·휴일·중증에 진짜 보상 | 당직표가 바뀔 만큼의 숫자 |
| 다음 단계 | 사람·성과 중심의 혼합형(주치의·ACO·P4P) | 상시 시범, 작동 설계는 신속 확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