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형외과 전문의입니다. 많은 분들이 성형외과라 하면 눈, 코, 얼굴 라인을 떠올리시지만, 사실 성형외과는 외상과 재건을 다루는 외과이기도 합니다.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할 당시, 저는 매일같이 응급실을 드나들었습니다.
단순한 열상 봉합부터 시작해, 교통사고로 얼굴뼈가 부서진 환자, 손가락이 절단된 채 들어온 노동자,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은 아이까지. 모두 성형외과의 영역이었습니다.
응급실은 말 그대로 전장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정치권에서 ‘응급환자 무조건 수용 법제화’ 논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인들은 과연 응급실의 무게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단순히 ‘사람을 살리자’는 선한 구호로 포장하기에는, 현실과의 간극이 너무 큽니다.

저 역시 환자로서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심한 복통과 고열로 새벽 3시에 응급실에 갔을 때, 이미 대기실은 환자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간호사는 제 상태를 살피며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심정지 환자도 들어오고, 교통사고 환자도 있어서요...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그 ‘조금’은 결국 두 시간이었습니다.
구토 봉지를 끌어안고 웅크려 앉아 있던 제 앞에는 팔이 부러진 환자가 있었고, 옆자리에는 창백한 얼굴의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스스로 되물었습니다.
“내가 과연 여길 와도 되는 환자였을까?”
이 경험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응급실은 단순히 호의와 선의로 운영되는 공간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치열한 현장이라는 사실을요.
‘무조건’이라는 말은 따뜻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은 노래방이 아닙니다. 환자의 상태는 천차만별이고, 그에 따라 의료진의 판단도 달라져야 합니다.
모든 환자를 무조건 수용한다고 했을 때의 문제는 단순히 “바빠진다”가 아닙니다.
환자가 위급한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의사, 간호사, 행정 인력 등 수많은 자원이 동원됩니다. 이
와중에 심정지 환자가 들어오면? 인력이 분산된 탓에 정작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응급실은 이미 벅찹니다. 인력은 한정돼 있고, 그들이 하루에 보는 환자 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무조건 수용’이라는 말은 마치 모든 환자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똑같은 수준의 처치를 하라는 요구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탈모와 모발이식을 다루지만, 여전히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습니다.
“선생님,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는데요. 모발이식하면 무조건 풍성해지겠죠?”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건 무조건은 아닙니다.”
무조건이라는 말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모든 일에는 맥락과 조건이 있습니다. 특히 의료는 그렇습니다.
응급환자 한 명을 수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침대를 내어주는 일이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장비, 시간, 그리고 다른 환자들이 포기해야 하는 수많은 자원이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아니지만, 현장의 의사들이 왜 분노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무대 위의 조명과 마이크만 보지, 그 뒤에서 숨 가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현실은 보지 못합니다.
법이 현실을 외면하고 만들어질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현장이고, 결국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받게 됩니다.
성형외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를 이어 붙이고, 얼굴이 찢긴 환자를 봉합해야 합니다.
무조건 받아들인다고 해서 올바른 치료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무조건 수용’이라는 말은 따뜻해 보이지만, 따뜻함이 때로 현실을 외면할 때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의료 현장에서 그런 외면은 누군가의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진료실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들었습니다.
“선생님, 여기만 이렇게 하면 무조건 자연스러워지죠?”
저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무조건은 없습니다. 우리 몸도, 우리의 삶도.
그리고 그 말은, 응급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글 작성 : 뉴헤어성형외과 김진오(대한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학술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