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우석 원장의 Day Out이 이번에는 성형외과로 발을 넓혔습니다. 그 첫번째로 압구정서울성형외과를 찾아 이민구 대표원장을 인터뷰했습니다. 압구정서울성형외과는 한국 성형외과의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걸어온 병원입니다. 압구정서울성형외과의 시작과 발전 과정, 해외 진출과 외국인 환자, 그리고 앞으로 한국 성형외과의 미래 등 폭넓은 주제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고우석 원장의 성형외과 탐방, 지금 시작합니다.
고우석 원장 : 먼저 공통 질문입니다. 공통 질문으로 성형외과를 선택한 이유는?
이민구 원장 : 미술을 좋아했어요. 의대 다닐 때도 미술반에서 활동했구요. 그래서 성형외과가 취향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형외과가 수입이 좋은 것도 영향이 있었고…, 마이크로 수술을 좋아해서 본과 2학년 때부터 그걸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3학년 방학 때 성형외과 레지던트 쥐실험 하는데 어시스트했어요. 거의 서브 인턴이라고 할 수 있었죠. 그래서 그런지 성형외과 시험도 제일 잘 보았어요. 들어가기 어렵다고 해서 학생 때부터 열심히 했습니다.
고우석 원장 : 이민구 원장님이 레지던트 하던 시기가 사실 엄청난 때였잖아요. 그때 선후배 전공의들이 김병건, 박상훈, 박원진, 박양수, 홍진주 등 웬만한 사람들 다 아는 성형외과 의사로 성장을 했죠. 그런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레지던트 하던 시기에, 쟁쟁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민구 원장 : 엄청 많은데요. 그때 저희 5년 위아래 연차가 좋은 인력이 많이 모여서 경쟁이 심한 때였습니다. 때일수록? 좋은 인력이 모이는 것 같다. 아무리 친해도 자기 수술하는 건 안보여 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어요. 서로 엄청 견제하던 시절이었죠.
그래도 당시 서울대 성형외과는 다른 병원 레지던트와는 다르게 직접 본인 환자의 수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준 유일한 병원이었죠. 1년차, 2년차 때 수술을 하는 걸 몇 백 개를 보고, 저는 1년차부터 수술 시작했어요. 그때 첫 수술이 서울대 병원 직원이었어요. 1년 동안 커피도 사주면서 친하게 지내면서 신뢰를 쌓아놓고 쌍꺼풀 수술을 싸게 해주겠다고 했죠. 떨리는 마음으로 수술을 한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그렇게 제 환자를 몇 백 명 하고 나왔어요. 그러다보니 다른 병원 의사들하고는 경쟁이 안되었어요. 수술을 한 번도 안 한 의사하고 수백 건을 한 의사가 개원가에서 경쟁을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고우석 원장 : 그러다 어떻게 개원을 하게 되었나요? 아시다시피 그당시는 서울대에서 전공의를 하면 누구도 개원을 하겠다고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문화였잖아요. 그런데 결국 피부과 한두 명 빼고 모두 개업을 했고, 성형외과도 다들 개원을 했죠. 이민구 원장님은 어떤 계기로 개원하게 되었나요?
이민구 원장 : 서울대 성형외과 펠로우를 할 때는 주로 미세혈관 수술, 두경부암 수술 후 재건 수술, 유방암 수술 후 재건 수술 위주로 했죠. 보라매병원에서 펠로우 할 때도 미세수술을 했는데, 다음 서울대 성형외과 스태프를 미세수술을 전공한 의사로 뽑겠다고 했고, 마이크로 하는 사람이 저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당연히 저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 있으면 교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이 먼저 교수가 되었죠. 결국 마이크로 수술을 하면서 교수가 되려면 너무 오래 걸리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보라매병원 성형외과 교수 한 분이 개업을 했는데, 잘 돼서, 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죠. 또 제가 아는 분이 병원을 하는데, 저 한테 '몸만 와라, 인테리어나 장비 다해주겠다'라고 하셔서, 조건이 좋다고 생각하고 개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압구정동 '클리닉9' 건물에서 제 병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고우석 원장 : 타이밍 적절하게 제안이 들어온 거네요.
이민구 원장 : 그때가 정말 미용 시장의 피크였던 1999년, 2000년이었어요. IMF가 지나가고 신용카드를 엄청나게 발급하면서 경기가 어마어마하게 좋은 때였잖아요.
고우석 원장 : 그 당시의 병원 이름이 압구정서울성형외과였나요?
이민구 원장 : 그때 동문이 같이 하는 서울성형외과가 전국에 몇 개 있었어요. 압구정, 관악, 부산, 울산, 강릉, 청주 등 서울성형외과 네트워크가 있었죠. 압구정서울성형외과는 저하고 두 분이 함께 동업을 했는데, 한 분은 코만하고, 또 한 분은 뼈만 하고, 나머지는 제가 다 하는 조건이었어요. 재무, 세무 등도 다 제가 했죠.
고우석 원장 : 사실 압구정서울성형외과의 변천 과정이 파란만장하다고 알고 있고, 그게 우리나라 성형외과 병원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병원의 성장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이민구 원장 : 일단, 2000년 7월에 개원했는데, 첫 달부터 흑자가 났어요. 섭외한 것도 아닌데 방송에도 많이 나오고. 또 눈, 코, 윤곽 등을 분야별로 나눠서 한 게 우리가 처음이었어요. 온라인마케팅도 우리가 처음이었는데, '선영아 사랑해'로 유명했던 마이클럽에 성형 상담을 했었죠. 그때 하루에 50개씩 상담이 올라왔어요. 그리고 프로포폴도 우리가 처음 들여왔어요. 대학에 있을 때 보고 아프지 않게 '무통 마취'라고 마케팅했죠.
고우석 원장 : 그 기사를 잊을 수가 없었어요. 마취 자체가 무통인데, 마취를 하고 자면 통증이 없는데, '무통 마취'는 뭐가 다른거냐고 우리들끼리 무척 궁금해 했죠.
이민구 원장 : 그 전에는 성형수술을 전신마취 아니면 부분 마취로만 했잖아요. 수면 마취가 없었으니까, 우리가 프로포폴로 그걸 처음 한 거죠. 국소마취만 하던 환자들에게 전신마취 안하고도 수술하는 소리도 안 들리고 아프지도 않다고 설명했어요.